교사의 희생보다는 교육의 제도와 구조가 먼저다.

학교에서 9월부터는 사교육 없는 학교의 일환으로 여러 가지 방과후 수업을 실시한다고 한다. 일본어, 토익, 영어 문법, 논술 등 교과 관련 과목도 있고, 체육 특기, 음악 레슨 등등 몇 몇 아이들이 원하는 예체능 과목도 있다. 과연 아이들이 얼마나 신청할지는 의문이지만... 그런데 이런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 늘 등장하는 단어가 있다. 바로 교사의 희생. 작년에 중학교에서 방과후학교를 진행할 때도 그랬고 이번에 사교육 없는 학교 프로그램을 시작하면서 역시 마찬가지다.

그 논리는 바로 이렇다. '현재 우리나라의 사교육비는 사상 최대이다 : 부모님이 막노동을 하고 가사 도우미 일을 하면서도 자식 학원은 보내고 싶어한다. 그런데 그마저도 안 되는 가정이 많아 소득 격차에 따른 교육 환경의 차이가 너무 크다. 그러니 그것을 공교육에서 끌어 안아야 한다.' 부모의 소득에 따라 아이들의 교육 환경이 극심한 차이가 나고 그것은 그 아이들이 자라 윗 세대가 되었을 때 더 큰 소득의 격차를 불러 일으킬 것이므로 이는 정말 끔찍한 문제이다. 그런데 정말 이것이 방과후학교, 사교육없는 학교를 진행한다고 해서 다 해결이 될까? 그것도 개개인 교사의 '희생'만으로? 나만 해도 9월이 되면, 정규 수업에 주5회 보충수업에, 논술 수업에, 주1회 야간 자율학습 감독에. 적어도 주4회는 집에 9시 전에 가기 어려울 것 같다. 게다가 수업 준비를 철저히 해야하니 집에 가서도 내내 수업 준비를 해야하는 셈인데 이렇게 휴식 없이 계속 가다간 아이들보다 내가 먼저 지쳐 떨어져 나갈 것 같다. 이것이 비단 나만의 문제는 아니다. 다른 교과 선생님들도 이런 생각들로 학교 오기가 싫다는 말씀을 많이 하시니- 그런데도 위에서는 힘들겠지만 좀 더 희생을 하자, 교사가 희생하면 보람이 있고 오로지 아이들을 생각해야만 훌륭한 교사이다, 이런 식으로 말씀을 하시니 아무 힘이 없는 교사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속에서 무기력하게 시간만 보낸다.

아이들이 있으므로 교사가 있는 것이고, 아이들의 성장을 위해 교사가 끊임 없는 노력을 해야하는 것은 백 번 옳은 말이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사회 구조적인 문제를 개인에게 책임지우려 하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눌 시간, 서로의 안부를 물을 시간, 서로의 내적 변화에 대해 관심을 가질 시간, 그 소중한 시간들은 방과후 수업, 보충 수업, 야간 자율학습 등등 여러 제도적인 시간들에 묻히고 만다. 그런 환경에서 창의적이고 비판적이며 인간적으로 매력 있는 아이들이 나올 수 없다. 정말 사교육 없는 나라가 되고 싶다면 교사의 희생을 말하기 전에 현재의 교육 제도와 구조부터 바꿔야 한다. 대학이 모두 특성화되어 대학의 서열화가 없어지고 등록금이 100만원 안팎으로 떨어져 들어가긴 쉬워도 나오긴 어려운 그런 구조,, 그런 입시 정책. (그러나 이건 지금 현실과는 너무 괴리가 있는 이야기이니 넘어갈 수밖에 없다.) 그냥 현실적으로 우선 야자도 100% 자율, 보충 수업도 100% 자율로 돌리면 현재 추진하려고 하는 프로그램을 실시할 수 있는 환경이 그나마 조금은 조성될 것 같은데... 야자와 보충을 100% 자율로 돌리는 것은 지금 할 수도 있는 일인데 모두들 지금 바꾸길 겁낸다.
 
파커 J. 파머의  "가르칠 수 있는 용기"를 읽었다. 여전히 두려움을 안고 가르치러 들어가고 그 순간 순간 아이들과 부딪히면서 아이들에게 또 배우고, 알게 되고... 그 기쁨의 순간을 사랑하는 좋은 교사들이 많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교사들의 자질을 충분히 살릴 수 없는 교육 현장이라면 교사에게 희생하라고 말하기 보다는 어떤 여건이면 좋겠느냐고 묻는 것이 먼저 아닐까? 9월이 오면 어떤 상황이 올까? 물론 힘들더라도 또 적응해서 살아가긴 하겠지만 그 지겹고 지친 시간들이 가끔은 내 자신에게 또 가끔은 나의 아이들에게 미안해지는 때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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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향주 | 2009/08/20 09:29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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